푸른 하늘이 미세먼지에 가려진 채 몇 날이 흘렀고
바람도 며칠째 아무런 소식이 없다.
가을에도 먼지를 무서워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미세먼지 경계경고가 내려지긴 했지만
누구에게나 얼마간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나서야 할 일이 있는 법이다.
밥벌이를 위해 날마다 일터로 나서야 하는 이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숨도 쉬기 어려운 눈 덮인 고산을 올라가는 이들이 그러할 테고
높은 곳에서 땅으로 뛰어내리는 이들 또한 그러할 것이며
빛도 들지 않는 바다 깊은 곳을 잠영하는 이들 또한 사정은 다르지 않다.
그래도 할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들보다 사정이 나은 건
즐거움을 위해 얼마간의 위험쯤 달갑게 감수하는 일이다.
10월도 하순으로 들어가기 시작한 저녁,
미세먼지에 갇힌 도시의 밤을 밝히는 가로등 조명이
마치 모래먼지 이는 중동의 어느 도시를 지나는 것처럼 사뭇 이국적이었다.
수원시민이 수원시향의 연주회를 찾아가는 길인데도
퇴근시간과 맞물린 이때의 도로는 말 그대로 주차장을 방불케 하고
수원의 동남쪽 끝에 있는 집에서 북동쪽 끝에 있는 SK아트리움까지 가려면
좋이 한 시간 가까운 조바심을 견뎌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그 길을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한 시간의 조바심을 보상받고도 남을 선물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시벨리우스 교향곡의 진수 두 곡을 한꺼번에 무대에 올린 이번 연주는
시향의 정기연주회가 악단과 시민애호가들 모두의 결실이라는 점에서
깊어가는 가을밤에 거둔 귀한 소득이었다.
참가수업의 일환이었던지 상당한 숫자의 어린 학생들이 객석을 차지했는데
음악감상에 대한 사전 훈련은 되어 있지 않아 보였다.
객석의 작은 소음이 듣는 이의 집중을 방해할 정도라면
무대 위에 있는 연주자들에게는 더 물을 필요도 없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돈을 쫓는 것처럼 묘사되는 세상을 살고 있기는 하지만
무대에 선 이들에게 기운을 주는 것은 사실 돈이 아니라 한 데 실린 마음과 박수다.
그러니 채워지지 않은 객석과 그 안의 웅성거림이
무대 위 지휘자와 연주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묻지 않아도 알 일이다.
연주가 끝났을 때 나도 모르게 ‘브라보’를 외치며 내 있는 힘껏 박수를 쳤다.
그때는 몰랐는데 집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실황녹음연주였고
나 말고는 아무도 ‘브라보’를 외치는 이가 없었다.
다른 때라면 내 차지로 돌아올 일이 아니었던 것에 비춰보면
가장 듣고 싶어했어야 할 연주에 정작 음악을 아는 이들의 숫자는 가장 적었던 밤 아닌가 싶었고
그것이 못내 아쉽고 아까웠다.
그래서 바라기로 수원에서 못 다 받은 보상을 서울 예술의전당 연주에서는 꼭 받기 바란다.
귀 기울여 들어볼 소리가 있다는 말을 듣고 간 연주회에서
정작 내가 얻은 것은 귀와 가슴속으로 쏙 들어온 오보에 소리였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귀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음악에 내 귀와 내 마음이 흐르는 길을 부정할 이유도 없다.
한 시간이나 걸려서 거기까지 가기가 힘들어 그만두었다는,
몇 십 년 음악애호가로 살아온 이가 내게 했던 말을 떠올리며
돌아오는 차 속에서 혼자 짓는 내 미소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당신은 한 시간보다 훨씬 귀한 선물 하나를 스스로 버린 거야.’
한 시간의 불편쯤 가볍게 여기고라도 가야만 했던 연주회,
지금까지 들어본 곡 가운데 단연 최고였다는 아내의 찬사까지 곁들여져
집으로 오는 길 가벼운 흥분의 기운으로 들뜰 내 눈에 가을밤의 미세먼지가 들어올 리 없었다.
작성자 : moyangsung 2015-1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