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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KBS 클래식FM에서 청취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이 사랑하는 교향곡 30선’ 안에 말러의 작품 4곡이 올라 있다. 11위 안에 전체 작품 9곡 중 5곡을 올려놓은 베토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프로그램 진행자 정만섭은 말러의 작품이 4개나 30위 안에 진입해 있는 것에 대해 우리 나라 클래식 청취자들의 감상 범위가 그만큼 다변화되고 있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수원시향의 차이코프스키 사이클을 시작으로 클래식음악을 듣기 시작했고 KBS가 발표한 ‘우리가 사랑하는 클래식’ 곡들을 찾아 들으며 불이 붙었으니 내 본격적인 음악감상 이력은 길게 봐줘도 4년을 넘을 수 없고 짧게 보면 2년을 막 넘어가고 있는 수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살면서 흘려서라도 들을 수 있었던 베토벤의 곡이라면 모를까 평생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낯설고 길기까지 한 말러의 교향곡은 한 곡이라도 끝까지 참을성 있게 들을 수나 있을까 하는 것이 그레이트 말러 시리즈가 시작되면서 품게 된 솔직하고 은근한 걱정이었다. 그런데 시리즈가 시작되고 두 번째로 듣는 3번 교향곡은 중간 휴식 없이 연주되는 시간만 자그마치 100분이었다. 집에서 인터넷을 뒤져 동영상을 찾아 듣기 시작했지만 처음에는 30분 넘게 이어지는 1악장의 벽조차 넘기가 쉽지 않았다. 몇 차례 도전과 중도 포기가 이어진 끝에 악장별로 끊어 듣기를 시도했는데 2악장을 듣던 중에 1악장에서는 맛보지 못한 끌림을 느낄 수 있었고 6악장을 들을 때는 마치 귀에 익숙한 좋아하는 곡을 듣는 것 같았다. 집안에 갑작스럽게 일이 생기는 바람에 두 해 동안 잘 챙겨 듣던 클래식 아카데미에 참석하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쉬웠지만 지금까지 들어온 교향곡 중 가장 긴 곡을 들으러 가면서도 불안하지 않았다. 이미 마음에 드는 악장 2개를 경험한데다가 내가 들어본 어떤 실제 연주도 동영상에서 받은 느낌보다 덜했던 때가 없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기대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연주가 얼마나 잘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내 귀가 아직 그런 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수준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젯밤 수원시향의 말러 연주는 음악을 듣기 시작한 지 4년밖에 되지 않은 초보 애호가의 귀를 붙잡아두는 데 성공했고 내 귀가 100분짜리 낯선 음악을 견뎌내는 맷집을 갖춘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어떤 연주단체라고 중요하지 않는 악기와 자리가 있을까마는 말러의 교향곡 2곡을 들으면서 금관악기와 타악기의 중요성을 새삼 느낄 수 있었는데 우주 안의 모든 것을 음악 안에 담고 싶어했다는 말러의 바람이 그렇게 악기의 편성과 연주 점유에까지 녹아 있는 것 같아서도 좋았다. 무대 위의 연주로 듣는데도 1악장은 역시 쉽지 않았고 2악장은 기대대로 귀에 순했으며 6악장은 편안함 뒤에 오는 (폭발하는) 환희(에 따른 전율)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만의 악장 하나 갖는 것이 음악감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던 수원시향 클래식 아카데미 강사 송현민의 말처럼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던 말러 교향곡 3번을 들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악장’ 하나를 추가할 수 있었던 건 아무도 내 선물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 나이에 받은 기대밖의 멋진 성탄선물이었다. 연주장을 나서다가 무대에서 맨날 보던 악장 자리에서 보이지 않던, 수원시향에서 퇴임한 이제는 전임 악장으로 불러야 할 김동현을 만났다. 허리를 숙여 눈을 맞춰 웃어주는 그와 반가우면서도 어색한 악수, 앞으로도 오래오래 시향에 대해 애정을 가져달라는 그와의 첫 만남이 헤어짐으로 이어지다니 참 얄궂은 운명이었다. 100분이라는 시간의 길이를 인식조차 하지 못한 사이에 길고 긴 연주가 끝났을 때, 객석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일어나서 박수를 쳤다. 평소와 달리 서둘러 객석을 빠져나가는 사람들도 눈에 뜨이지 않았다. 오랫동안 이어진 박수는 앵콜을 청하는 박수가 아니었다. 대곡을 감동스럽게 연주해준 지휘자와 연주자들에게 바치는 마음이었다. 음악애호가들의 숫자가 시세市勢만 못한 것 같은 평소의 느낌이 눈 녹듯 사라지면서 이만하면 수원시향에 대한 음악애호가들의 애정과 충성도를 의심하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다. 마에스트로 김대진과 수원시향 연주자들, 그리고 시향을 비롯한 시립예술단 단원들과 관계자들에게 한 해를 즐겁고 행복하게 함께할 수 있어서 고마웠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내년에도 이어질 말러의 새로운 연주를 기대하면서……. Merr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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